2025년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속한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마비시킨 전례 없는 규모의 대정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현대 사회의 전력 의존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이 사건은, 특히 주변국과의 전력망 연계가 제한된 '에너지 섬' 대한민국의 미래 전력 시스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5초 만에 60% 발전 용량이 사라진 날
- 2025년 4월 28일 오후 12시 33분경(현지 시간) 이베리아 반도 전력 시스템에서 시작된 정전은 단 5초 만에 스페인 전력 수요의 약 60%에 해당하는 15GW 발전 용량이 소실되는 급격한 시스템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스페인과 포르투갈 본토 전역이 마비되었습니다.
- 전력 마비로 교통 시스템(철도, 지하철, 항공, 도로 교통), 통신망(휴대전화, 인터넷), 의료 시스템, 금융 등 사회 필수 기능이 마비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만 열차 승객 3만 5천여 명이 구조되었고, 인터넷 접속률은 평상시의 17%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병원은 비상 발전기에 의존해야 했으며, 상점, 은행 등 대부분의 시설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초기 추산된 경제적 손실은 수십억 유로에 달하며, 안타깝게도 발전기 오용, 의료 장비 중단, 화재 등으로 최소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 복구는 정전 발생 후 약 10시간 이상 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다음 날 새벽 대부분의 전력 공급이 정상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철도, 통신 등 일부 서비스는 이후에도 차질을 빚었습니다.
정전 원인 조사 중
정확한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 시스템 불안정으로 인한 스페인 남서부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차례의 급격한 시스템 '진동' 또는 '탈락 현상'이 직접적인 계기로 보입니다.
- 재생에너지 이용율 높은 관계로 사고 당시 스페인은 태양광 발전 비중이 53%에 달하는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는 낮은 관성(주파수 변화 저항) 문제와 결합하여 시스템 안정성을 저해했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높은 변동성 재생에너지(VRE) 비중 하에서의 계통 안정성 문제가 주요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 EU국가 연계 부족으로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 대륙과의 전력망 연계 용량이 매우 낮아 "에너지 섬"으로 불립니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전력 지원을 어렵게 만들어 시스템 취약성을 증폭시킨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대한민국 전력 시스템과의 비교
대한민국 전력 시스템은 스페인과는 다른 특징과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전력 다각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에 따라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확대하고 청정수소/암모니아 발전을 도입하는 등 다각화된 무탄소 전원믹스를 추구합니다. 스페인이 태양광과 풍력 등 VRE에 크게 의존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 계통 운영: 한국전력거래소(KPX)는 전력시장 운영과 계통 관리를,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KEPCO)는 송·배전망의 독점 소유·운영을 각각 담당합니다. 이를 통해 국가 차원의 일관된 전력 정책 수립과 안정적인 전력 수급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반면 유럽은 발전·송전·배전·공급 부문이 법적으로 분리(Unbundling)되어, 각국의 독립계통운영자(TSO)와 규제기관(NRA)가 시장 경쟁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예컨대 스페인의 REE(Red Eléctrica de España)는 상장된 독립계통운영자이고, CNMC(Comisión Nacional de los Mercados y la Competencia)는 시장 감독을 담당하는 독립 규제기관입니다.
- 안정성 확보: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 계통 특성을 고려하여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초고압직류송전(HVDC) 등 국내 유연성 자원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연계 용량이 부족하고 BESS 보급이 더딘 스페인과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또한 국가 차원의 강력한 사이버 보안 체계를 구축하여 운영 안정성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블랙아웃에서 안전한가?
스페인 정전 사태는 대한민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VRE 확대는 반드시 계통 안정화 및 유연성 확보 조치와 병행되어야 하며, 이는 ESS, HVDC 등 관련 인프라의 차질 없는 구축과 시장 제도 개선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11차 전기본을 통해 대규모 ESS 및 HVDC 투자 계획을 세우고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조화시키는 등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공기업 중심의 시스템은 일관된 정책 추진에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계통 고립성, VRE 및 원자력의 동시 확대에 따른 관리 복잡성 증가, 사이버 보안 위협 등 잠재적 위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계획된 인프라의 적기 구축과 더불어,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한 비상 대응 체계 점검 및 강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스페인 사태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력망 안정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한민국 역시 '에너지 섬'이라는 제약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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