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달러의 두 얼굴-스테이블코인, 미래의 '화폐'인가 새로운 '투자'인가?

'1코인=1달러'라는 안정성을 내세운 스테이블코인. 하지만 그 얼굴은 하나가 아닙니다. 저렴한 해외 송금 '화폐'로 쓰이는 동시에,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투자' 도구로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스테이블코인의 두 얼굴과 그에 따른 위험성, 그리고 규제 속에서 변화할 미래 금융 지도를 조명합니다.

디지털 달러의 두 얼굴-스테이블코인, 미래의 '화폐'인가 새로운 '투자'인가?
Photo by micheile henderson / Unsplash

2025년 10월 23일

최근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비트코인의 극심한 변동성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해 '1코인=1달러'라는 안정성을 내세운 이 디지털 화폐는 이제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우리 경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하지만 그 정체성을 두고 시장의 질문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과연 스테이블코인은 커피를 사 마시는 '미래의 화폐'일까, 아니면 은행 예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투자 수단'일까?

일상으로 들어온 디지털 달러, '화폐'의 역할을 하다

스테이블코인의 탄생 목적은 명확했다. 바로 '안정적인 교환 매개 수단'이 되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가치가 널뛰는 암호화폐와 달리,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고정함으로써 디지털 세상의 '현금'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실생활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국경 간 송금 시장에서는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며칠씩 걸리고 비싼 수수료를 내야 했던 기존 은행망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1센트 미만의 비용으로 해외 송금이 가능해졌다.

아르헨티나와 같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는 국가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자산 가치를 지키는 '디지털 금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국 화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자, 많은 국민이 월급을 받자마자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해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의 핵심 기능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가치는 그대로인데 수익이? '투자 도구'로 진화하다

"1코인이 1.5달러가 되기를 기대하고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스테이블코인 투자의 핵심이다. 스테이블코인 자체는 가치 상승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끄는 것은 '투자'의 영역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자체로 투자 '대상'이라기보다, 수익을 창출하는 강력한 투자 '도구'로 활용된다. 사용자는 자신의 스테이블코인을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프로토콜에 예치하고 은행 예금보다 높은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마치 달러 예금을 고금리 상품에 넣어두는 것과 같은 원리다.

Aave나 Compound와 같은 디파이 대출 플랫폼에 스테이블코인을 맡기면,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용자에게 대출해주고 그에 대한 이자를 받는다. 또한, 탈중앙화 거래소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거래 수수료의 일부를 분배받는 '수익 농사(Yield Farming)'와 같은 적극적인 투자 전략도 활발하다. 이러한 활용 방식 때문에 규제 당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에 이자를 지급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까지 벌어지고 있다.

'안정'이라는 이름의 함정-디페깅과 붕괴의 위험

하지만 '안정'이라는 이름이 항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1달러를 기준으로 미세하게 변동하는 일이 항상 일어난다. 대부분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수급에 따른 현상으로, 차익거래를 통해 금세 1달러로 회귀한다.

진짜 위험은 '디페깅(De-pegging)', 즉 가치 연동이 깨지는 현상이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당시,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 USDC는 준비금 일부가 SVB에 예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신뢰가 흔들렸고, 가격이 한때 0.88달러까지 폭락했다. 이는 아무리 안전하게 관리되는 스테이블코인이라도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2022년의 '테라-루나 사태'다. 실제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유지하려던 이 실험은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자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지며 50조 원이 넘는 가치가 증발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 메커니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장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미래의 금융 지도-규제와 공존의 시대

스테이블코인의 이중적 성격은 규제 당국과 전통 금융권의 대응을 서두르게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GENIUS 법안'과 'MiCA'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게 은행에 준하는 엄격한 준비금 보유 및 감사 의무를 부과하며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동시에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대항마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JP모건, 씨티은행 등 글로벌 대형 은행들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직접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뛰어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와 '투자'라는 두 개의 얼굴을 모두 가진 채 우리 곁에 다가왔다. 국경을 넘어 더 빠르고 저렴한 '결제 수단'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블록체인 위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CBDC 및 전통 금융 시스템과 공존하며 각자의 영역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펼쳐질 디지털 금융 시대에 스테이블코인이 우리의 지갑 속에서 어떤 얼굴로 자리 잡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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