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관객이 급감한 영화관 산업이 삼중고에 직면했다. 치솟은 관람료와 할인 축소로 인한 가격 저항, 편리한 OTT의 공세, 그리고 몰입 경험마저 위협하는 VR의 등장이 원인이다. 영화관들은 프리미엄화와 M&A로 대응 중이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생존 과제를 안고 있다.
2025년 6월11일
팬데믹 이후 관객 급감, 콘텐츠 가뭄... '경험'과 '기술'로 활로 찾는 극장가
치솟은 관람료와 사라진 할인 혜택, 안방서 즐기는 '나만의 극장' VR의 위협까지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영화관 산업은 여전히 전례 없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폭발적인 성장과 그로 인해 변화된 콘텐츠 소비 습관은 극장으로 향하던 관객들의 발길을 돌려세웠다. 2024년 한국의 총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매력적인 개봉작이 줄어드는 '콘텐츠 가뭄' 현상까지 겹치며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제 영화관은 단순한 상영 공간을 넘어 '특별한 경험'을 파는 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하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동시에 완전한 몰입감을 무기로 한 가상현실(VR) 기술이 영화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며, 그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안갯속에 놓여있다.
치솟은 관람료와 사라진 할인... 관객의 발길 돌린 '가격 저항'
영화관 위기를 가속화한 데는 외부의 위협뿐만 아니라 내부의 가격 정책도 한몫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영화관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관람료를 큰 폭으로 인상했다. 3년 새 티켓 가격은 약 40%나 치솟아, 1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 인상과 동시에 통신사, 카드사와 연계된 각종 할인 혜택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비용이 너무 비싸졌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는 OTT 구독료와 비교되며 가격 저항을 더욱 키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정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할인에 익숙했던 핵심 관객층이 이탈하면서 관객 1인당 실제 지불액인 '객단가'는 오히려 하락하는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프리미엄 경험을 내세워 가격을 올렸지만, 정작 가격에 민감한 관객들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방극장으로 떠난 관객들... '콘텐츠 전쟁' 주도하는 OTT
영화관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단연 OTT 플랫폼의 급성장이 꼽힌다.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 등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방대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영화관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특히 이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사활을 걸고 있다. 넷플릭스는 향후 4년간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며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와 같은 글로벌 히트작을 연이어 탄생시켰다. 이러한 '콘텐츠 전쟁'은 재능 있는 영화 인력들마저 OTT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으며, 극장용 영화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험 경제'로 반격 나선 영화관... 프리미엄화와 M&A로 돌파구 모색
생존의 기로에 선 영화관들은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무기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핵심 전략은 '프리미엄화'다. 등받이가 완전히 젖혀지는 리클라이너 좌석, 오감을 자극하는 4DX와 초대형 스크린 IMAX 같은 특별관 확대, 그리고 고급화된 식음료 서비스 도입이 대표적이다. K팝 아티스트의 콘서트 실황이나 스포츠 경기 생중계 등 영화 외 콘텐츠를 상영하며 사업 다각화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 영화관 체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1위 사업자인 CJ CGV는 4DX와 ScreenX 같은 자사 독점 특별관을 강화하고 K팝/스포츠 등 콘텐츠 다변화를 꾀하며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한편, 업계 2, 3위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2025년 5월 전격적으로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프리미엄관 확대 및 콘텐츠 투자 활성화로 OTT에 대항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영화관을 위협하는 진짜 복병, VR
OTT가 콘텐츠 소비 습관을 바꿨다면, 이제는 영화관의 '몰입 경험' 자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가상현실(VR) 기술이다. 고해상도 VR 헤드셋이 고품질 사운드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안방을 순식간에 몰입감 넘치는 개인 영화관으로 바꾸고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영화관을 찾는 대신, 집에서 편안하게 VR 기기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대형 스크린과 입체 음향을 갖춘 극장과 유사한, 혹은 그 이상의 몰입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영화관이 마지막 보루로 내세우는 '경험의 가치'마저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을 의미하며, 영화관의 미래에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체 불가능성' 증명해야 생존... 안갯속 영화관의 운명
전문가들은 미래가 특정 플랫폼의 독식이 아닌 공존 형태가 될 것이라 전망하면서도, 영화관이 과거와 같은 위상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OTT가 콘텐츠 소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VR 기술이 영화관의 핵심 가치인 '몰입 경험'마저 위협하는 상황에서, 영화관의 생존은 이제 '프리미엄'을 넘어선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증명하는 데 달려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선제적으로 혁신하지 못한다면, 100년 넘게 이어온 영화관의 불빛이 예상보다 빨리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스온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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