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진보·보수 실종 사회, 누가 ‘극단’의 방아쇠를 당겼나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분단 현실 속에서 본래 의미를 잃고 대북 정책을 둘러싼 이념 전쟁으로 변질됐다. 언론은 진영 논리와 검찰 받아쓰기 관행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며 신뢰를 잃었고, 이는 양극단 부상과 사회 분열을 심화시켰다. 낡은 이념 프레임을 넘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언론을 감시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이 시급하다.

2025년 6월 9일

분단 현실이 삼켜버린 정책 대결, 언론은 ‘확성기’인가 ‘감시자’인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익숙한 두 축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두 단어는 본래의 철학적 의미를 잃고, 서로를 향한 적개심과 분열의 상징으로 변질되었다. 정책과 비전의 경쟁은 실종되고, ‘친북-반북’이라는 거대한 안보 프레임이 모든 담론을 집어삼키는 ‘이념 전쟁’만이 남았다. 이 끝없는 대립의 한가운데, 우리 사회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리고 왜 한국 언론은 국제 사회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신뢰도를 기록하며 위기를 맞고 있는가?

‘빨갱이’와 ‘친일 매국’ 프레임 변질된 이념의 역사

서구에서 ‘진보’는 평등, 개혁, 사회적 약자 보호를, ‘보수’는 자유, 안정, 점진적 변화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하지만 이 개념들은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수십 년간의 군사 독재라는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토양 위에서 왜곡된 형태로 뿌리내렸다.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진보’와 ‘좌파’는 곧 ‘공산주의’, ‘북한 동조(종북)’, ‘빨갱이’라는 낙인과 동일시됐다. 반정부 세력과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사용된 것이다. 반대로 ‘보수’는 반공과 친미, 국가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기득권을 지켰다. 본래 경제 정책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입장 차이를 의미해야 할 진보-보수 구도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대북 정책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단 하나의 잣대로 변질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주의는 전통적 가치보다는 반공과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이념적 빈곤’에 시달렸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진보주의는 민주화 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종북’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종북 빨갱이’라는 거친 표현의 사용 빈도는 과거에 비해 줄었을지 몰라도, 북한과의 관계 설정은 여전히 한국 진보 진영의 가장 어렵고 복잡한 과제로 남아있다. 진보 진영에서 대화와 포용 정책을 추진하면 보수 진영은 이를 ‘친북’으로 규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강경한 대북 정책이 ‘보수’와 동일시되는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부정적 정체성’만이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다.

왜 진보와 보수는 극우화되었나

이러한 이념의 변질은 양 진영의 ‘극단화’라는 더 위험한 현상을 낳았다.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안은 극단주의가 자라날 토양이 되었다. 여기에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면서, 시민들은 온건한 대안 대신 극단 이념이 제공하는 단순한 설명과 희생양 찾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는 극단적인 견해가 증폭되는 ‘반향실’ 역할을 하며 이러한 현상을 가속했다.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베’는 극단적 민족주의, 역사 왜곡, 여성 및 소수자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세력을 키웠다. 이는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등 사회 변화에 대한 일부 젊은 남성들의 반발과 피해 의식이 결합된 결과이기도 하다.

진보 진영의 극단화는 뚜렷한 세력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주류 진보 정치가 뿌리 깊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데 대한 환멸감에서 비롯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주류 보수주의의 ‘이념적 빈곤’과 진보를 향한 끊임없는 ‘종북’ 프레임은, 합리적이고 온건한 정치적 대안의 매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양극단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이념 전쟁의 확성기, 신뢰를 잃은 언론

이러한 이념의 변질과 극단적 대립을 심화시킨 주범 중 하나로 언론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 사실 전달과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채,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확성기’ 역할을 자처했다는 비판이 뼈아프다.

◼︎ 검찰 ‘받아쓰기’와 단독 경쟁: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 언론은 검찰이 흘리는 피의사실을 검증 없이 받아쓰며 의혹을 기정사실로 확산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루 평균 11건이 넘는 ‘단독’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 대부분이 검찰 발 정보에 의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무분별하게 보도되며 비극을 낳았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근 배우 이선균 씨의 비극적인 죽음 역시, 수사 초기 단계부터 정보가 유출되고 언론이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며 빚어진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여론재판’을 형성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하고, 언론이 사법 권력의 일부가 되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 진영 논리와 혐오의 정치: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는 일부 내용이 허위·왜곡으로 판명되면서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대규모 촛불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는 언론 보도가 가진 엄청난 파급력과 함께, 정확성과 균형을 잃었을 때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언론이 진영 논리에 갇혀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한 프레임을 설정하고, 반대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면서 정치적 양극화는 극에 달했다. 이런 환경에서 합리적 토론은 실종되고 ‘팬덤 정치’와 같은 극단적 집단주의만 횡행하게 된다.

신뢰도 꼴찌의 불명예, 국민은 어디를 봐야 하나

이러한 언론의 행태는 결국 스스로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보고서 2024’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31%로 조사 대상 47개국 중 38위에 그쳤다. 이는 ‘기레기’라는 멸칭(滅稱)이 일상화되고,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사 거래’ 의혹까지 불거지는 등 언론인들의 직업윤리 부재와 언론사 내부의 자정 기능 실패가 누적된 결과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 환경은 언론사의 브랜드를 희석시키고, 클릭 수에만 매달리는 자극적인 보도를 양산하며 신뢰도 하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제 국민이 눈을 떠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낡고 왜곡된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개별 정책과 사안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종북’이나 ‘친일’이라는 낡은 구호가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 사회 안전망, 기후 변화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즉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언론 보도를 맹신하기보다 출처를 확인하고, 여러 매체의 논조를 비교하며, 숨은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판적인 시민들이 많아질 때, 언론 역시 자극적인 보도 경쟁에서 벗어나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저널리즘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단이 낳은 이념 전쟁의 안개를 걷어내고, 진정한 정책 경쟁의 시대를 여는 것은 정치인이나 언론의 시혜(施惠)가 아닌,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우리가 낡은 프레임을 거부하고 현명한 감시자가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소모적인 이념 대결을 넘어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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