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물' 흘리며… 대한민국 1호 공기업, 역사 속으로
대한민국 1호 공기업 대한석탄공사가 75년 만에 폐업했다. 산업화의 동력이었으나 정부의 가격 통제 정책으로 2.4조원의 빚을 떠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슬픔과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부채 처리와 정의로운 전환, 산업 유산 활용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

2025년7월2일
에너지 정책 전환의 기로에서 본 석탄공사 75년의 영욕과 과제
2025년 6월 30일, 대한민국 '공기업 1호' 대한석탄공사가 마지막 불꽃을 껐다. 75년간 국가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심장, 강원 삼척의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한국 공영 석탄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증산보국(增産報國)'의 구호 아래 갱도에 청춘을 묻었던 가장들은 일터를 잃고 망연자실했다. 한 시대의 종언 뒤에는 국가 정책이 만든 2조 4,000억 원의 빚더미와,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의 슬픔, 그리고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숙제가 남았다.
'검은 황금'의 영광과 상흔
석탄공사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국가 재건을 목표로 1950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공기업이었다. 1960~70년대 '검은 황금'이라 불린 석탄은 공장을 돌리고, 서민들의 방을 데우는 혈액과 같았다. 75년간 석탄공사가 캐낸 1억 9,400만 톤의 무연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그 영광의 이면에는 광부들의 피와 땀, 그리고 생명이 있었다. 위험한 갱도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희생은 막대했다. 석탄공사 역사에서 산업재해 사상자는 총 69,223명, 이 중 1,6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국가의 성장이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기록이자, 폐업을 단순한 경제 논리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예고된 파산: 국가가 만든 적자의 늪
석탄공사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결정타는 1989년 시작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었다. 석유와 가스에 밀려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정부는 비경제적인 탄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저소득층의 난방 연료인 연탄 공급을 위해 석탄공사의 명맥을 유지시켰다.
문제는 가격 정책이었다. 정부는 서민 생활 안정을 이유로 연탄 가격을 생산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억제했다. 2018년 기준, 석탄 1톤의 생산원가는 약 30만 원이었지만 판매 가격은 15만 원에 불과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기형적인 구조였다. 석탄공사 노조가 "서민을 위해 목숨 걸고 석탄을 캤더니, 방만 경영이라며 책임을 돌린다"고 항변한 것은 바로 이 구조적 모순 때문이었다. 결국 2조 4,000억 원이 넘는 부채는 경영 실패가 아닌,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수십 년간 이어진 정부 정책이 남긴 '정책 비용'의 청구서인 셈이다.
일터 잃은 가장들, "모두 나가라니 막막합니다"
정부는 폐광으로 퇴직하는 광부들에게 법률에 근거한 폐광대책비와 조기 폐광에 따른 특별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갱도에서 직접 석탄을 캔 광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본사 및 사무직으로 일해 온 187명의 직원은 아무런 고용 보장 없이 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다. 특히 30~40대 젊은 직원들은 "모두 나가라니 막막하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외치는 '정의로운 전환'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보여준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모든 노동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원칙과 달리, 직군에 따라 차별적인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탄광 폐쇄는 노동자 개인의 실직을 넘어 지역 경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한때 번영했던 태백, 삼척 등 탄광 도시들은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상권이 무너져 '지역 소멸'의 위기에 직면했다.
석탄의 시대는 끝났는가: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
국내외 에너지 지형은 이미 석탄과의 작별을 고하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전 세계적인 탈탄소, 탄소중립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석탄의 입지는 사라졌다. 국내에서도 석탄은 더 이상 핵심 에너지원이 아닌 과거의 유산으로 취급된다. 석탄공사의 폐업은 이러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이제 국가는 석탄 이후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관건은 '어떻게 퇴장하는가'이다. 채탄 기능이 멈춘 석탄공사는 2조 4,000억 원의 빚만 떠안은 '좀비 공기업'으로 남았다. 정부는 유사 기관인 한국광해광업공단과의 합병이나 공적자금 투입 후 청산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어느 쪽도 쉽지 않아 결정을 미루고 있다.
폐광의 유산, 흉물인가 보물인가
정부는 폐광지역에 바이오, 청정 메탄올 등 대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과거 수많은 개발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경험 때문에 지역 사회의 불신은 깊다.
해외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86년 폐광한 독일의 '촐페라인(Zollverein)' 탄광은 산업 시설을 부수지 않고 박물관, 디자인 스쿨, 공연장으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연간 150만 명이 찾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문화 명소가 되었다. 촐페라인의 성공은 폐광 시설이 지역의 역사를 담은 소중한 자산이자 미래를 위한 창조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석탄공사의 퇴장은 한 시대의 끝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남겨진 부채와 사람, 그리고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품위 있고 공정하게 해결하는가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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