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시장 ‘무법지대’ 시대의 종언…'디지털자산기본법'이 온다
최근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의 전면적인 제도화를 예고한다. 2017년 이후 금지됐던 ICO를 발행신고서 제출 의무화로 대체하고, 사업자를 인가·등록제로 규율하며, 독립된 위원회가 상장을 심사한다. 이는 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글로벌 규제 흐름에 발맞추는 긍정적 시도지만, 높은 진입장벽에 따른 혁신 위축, 해외 사업자 규제 공백, 투자자 보호의 실효성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업계는 새로운 규제 환경 적응이라는 큰 도전에 직면했다.
2025년 6월 12일
디지털 자산 기본법 입법 예고, 시장 격변 예고... "무법지대 종식" 기대 속 "혁신 저해" 우려 교차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이 공개되면서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단편적인 이용자 보호 규제에 머물렀던 것에서 나아가, 디지털 자산의 발행부터 상장, 사업자 규율, 불공정거래행위까지 포괄하는 첫 기본법의 등장은 시장의 제도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법안은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만큼, 정치적 추진력을 바탕으로 2025년 하반기 내 국회 통과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법안 통과 이후를 대비한 선제적 대응 전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번 입법은 장기적으로 시장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주요 시장 변화 전망: ICO 허용부터 통합 감독까지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디지털 자산 시장은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겪게 될 전망이다.
- '규제 샌드박스' 내 ICO 공식 허용: 법안은 법정 양식의 '발행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함으로써, 2017년 이후 사실상 전면 금지됐던 가상자산공개(ICO)를 제도권 내로 편입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이는 프로젝트팀이 명확한 법적 책임하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 사업자(DASP) 유형화 및 차등 규제: 디지털자산사업자(DASP)를 매매·중개·보관업(인가), 집합관리·자문업(등록), 주문전송·유사자문업(신고) 등으로 세분화하고, 자본시장법에 준하는 진입 규제를 도입한다. 특히 거래소 등 인가 사업자에게는 최소 5억 원의 자기자본, 엄격한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 시스템을 요구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일 방침이다.
- '상장위원회' 통한 상장·폐지 결정: 개별 거래소의 자율에 맡겨졌던 상장(거래지원) 및 상장폐지 결정 권한이 한국디지털산업협회 산하의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로 이관된다. 이는 거래소 중심 자율규제의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하고 상장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조치다.
-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제: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즉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원하는 사업자는 금융위원회로부터 별도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준비금 관리 및 상환 계획에 대한 당국의 실질적 심사를 통해 금융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산적한 과제: 혁신, 규제 공백, 그리고 독립성
기대감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명확하다. 전문가들은 법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몇 가지 쟁점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높은 진입장벽과 혁신 위축 우려: 인가·등록제에 따른 자본금 요건과 복잡한 컴플라이언스 의무는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나 혁신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사업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어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는 '시장 집중'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 '형식적 심사'에 따른 투자자 보호 한계: 일반 디지털 자산의 발행신고서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형식적 심사'만을 진행한다는 점은 잠재적 허점으로 꼽힌다. 사업 모델의 실현 가능성이나 기술의 타당성에 대한 실질적 검토가 없다면, 부실하거나 기만적인 프로젝트가 초기 발행 단계를 통과해 투자자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
- 역외적용 한계와 규제 차익 문제: 법안 스스로 해외 디지털 자산 발행인에게 발행신고서 제출을 강제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는 동일한 수준의 정보 공개 의무를 지지 않는 해외 프로젝트가 국내에 유통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국내 발행인과의 규제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투자자 보호의 공백을 만들 수 있다.
- 신설 기구의 독립성·전문성 확보: 상장 및 폐지를 결정할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가 산업협회 산하에 설치된다는 점은 이해상충의 위험을 내포한다. 또한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등 신설 기구들이 정치적 영향력이나 업계 로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규제 경쟁 속 한국의 위치
이번 입법 추진은 한국만의 움직임이 아닌, 전 세계적인 규제 강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유럽연합(EU)의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 법안(MiCA), 미국의 책임있는 금융 혁신법(RFIA) 등 주요국들 역시 디지털 자산을 기존 법체계에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기본법 제정은 글로벌 규제 흐름에 발맞춰 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긍정적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문제는 각국의 규제 세부사항이 다르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정의, 사업자 자본금 요건, 인허가 범위 등이 국가마다 달라, 글로벌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복잡한 규제 준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한 국가의 인허가가 다른 국가에서 통용되는 '패스포팅' 제도가 없는 한, 기업들의 규제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법안은 한국 시장을 국제 기준에 맞추는 동시에, 글로벌 규제의 파편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남겨진 숙제: 하위 법규와 시장의 적응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시장의 큰 틀을 제시하는 '기본법'으로, 실제 규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마련될 대통령령과 금융위 지침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업계는 이 하위 법규 제정 과정에서 규제 당국과 건설적으로 소통하여 현실성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법안은 한국 디지털 자산 시장의 '무법지대'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제도권 금융 수준의 책임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법안이 가져올 안정성과 투명성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하고,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국회, 그리고 산업계의 깊이 있는 논의와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뉴스온블로그]
구독자에게 드리는 개인적 의견 (구독은 무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