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고립의 시대를 넘어, 존엄한 노후를 위한 길을 묻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급증하는 독거노인과 고독사의 실태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경제‧건강‧사회적 고립이 빚어내는 ‘취약성의 악순환’을 짚고, 일본·북유럽 사례를 통해 ‘시설’이 아닌 ‘주거’ 중심의 통합 돌봄 시스템이 필요함을 제언합니다.

[심층기획] 고립의 시대를 넘어, 존엄한 노후를 위한 길을 묻다
Photo by Mark Hang Fung So / Unsplash

2025년7월22일

2025년,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 거대한 인구구조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독거노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가 있다. 이는 단순한 거주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전통적 가족 부양 체계의 한계와 빈곤, 건강 악화, 사회적 고립, 그리고 고독사라는 다층적 위기에 직면한 새로운 취약계층의 등장을 뜻한다. 현행 정책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시설’이 아닌 ‘자신이 살던 집’에서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으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통계가 드러낸 ‘취약성의 악순환’

겉으로 드러난 수치는 종종 현실을 가린다. 고령자 가구의 평균 순자산이 4억 원을 넘는다는 발표 뒤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73.9%가 ‘생활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노인부부 가구(48.1%)와 비교해 훨씬 높은 수치로, 경제적 어려움이 독거노인 집단에 집중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경제적 위기는 곧바로 건강 위기로 이어진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좋다’고 평가한 독거노인은 34.2%에 불과하며, 평균 2.4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부실한 영양관리, 신체 기능 저하, 그리고 7.2%에 이르는 높은 손상 경험률은 서로 맞물려 건강을 더욱 악화시킨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사회적‧정신적 고립이다. 독거노인의 우울증상 유병률은 16.1%로, 노인부부 가구(7.8%)의 두 배를 넘는다. 위급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8.7%에 달한다. 경제적 어려움, 신체적 쇠약, 사회적 고립이 서로 원인이자 결과가 되어 ‘취약성의 악순환’을 형성하며 개인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고독사, 노년이 아닌 중년부터 시작되는 비극

이 악순환의 가장 비극적인 종착지는 고독사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고독사는 총 3,661명으로, 하루 평균 10명이 사회적 관계망 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통념과 달리 고독사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망자의 84.1%가 남성이며, 연령대별로는 60대(31.3%)와 50대(30.0%)가 가장 많다. 50~60대 남성이 전체 고독사의 절반 이상(53.9%)을 차지하는 핵심 위험 집단이다. 이는 고독사가 노년기에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기에 겪는 실직, 이혼, 사별 등으로 사회관계망이 붕괴되면서 이미 시작된 고립이 누적된 결과임을 시사한다. 예방의 골든타임은 노년이 아닌 중장년기일 수 있다.

현행 정책의 현주소, ‘사후약방문’의 한계

정부는 2020년 여섯 개로 분절된 서비스를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통합하며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ICT 기술을 활용한 ‘응급안전안심서비스’는 2022년 한 해에만 2만 4천여 건의 응급상황에 대응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청주시가 운영하는 '병원동행서비스'나 '퇴원 어르신 돌봄'처럼 지역 특성에 맞는 혁신적인 시도도 있다.

그러나 시스템의 기본 작동 논리는 ‘문제가 드러난 대상을 발굴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후 대응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정부 스스로도 “사전예방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인정한다. 보건(건강보험)‧복지(맞춤돌봄)‧요양(장기요양보험) 서비스가 각기 다른 기관에서 분절적으로 제공되는 ‘칸막이 행정’은 노인의 복합적 욕구에 총체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낳는다. 더욱이 현행 제도는 연령(만 65세 이상)과 소득 기준으로 대상을 선정하기 때문에, 고독사 핵심 위험군인 50~60대 중장년 남성은 정책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해외에서 찾는 대안: ‘시설’이 아닌 ‘시스템’과 ‘주거’

고령화를 먼저 겪은 국가들은 문제 해결의 초점을 ‘개별 프로그램’이 아닌 포괄적 ‘시스템’ 구축에 맞추고 있다. 특히 ‘요양원’ 중심 돌봄에서 벗어나, 개인이 살던 곳에서 존엄하게 나이 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핵심 철학으로 삼는다.

  • 일본: ‘결과’가 아닌 ‘원인’에 집중하다
    한국의 법이 ‘고독사’라는 비극적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일본은 2024년 4월부터 「고독‧고립대책추진법」을 시행하며 그 ‘원인’인 ‘고독과 고립 상태’ 자체를 사회가 예방‧해소해야 할 과제로 규정했다. 정책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된 것이다.
  • 스웨덴‧덴마크: ‘주거’가 최고의 돌봄 플랫폼
    북유럽 국가들은 주거 정책을 복지 전략의 핵심으로 활용한다. 덴마크는 1987년 요양시설 신규 건설을 금지하는 파격적 조치로 돌봄 시스템을 지역사회와 주거 중심으로 전환시켰다. 스웨덴의 ‘안전강화주택(trygghetsboende)’은 병원도 요양원도 아닌, 안전장치와 공동체 시설이 내장된 ‘아파트’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물리적 환경이 사회정책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민국, ‘존엄한 노후’를 위한 길을 제언하다

분석 결과, 대한민국의 독거노인 정책은 여전히 분절적이고 사후 대응적이며,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임이 확인됐다. 이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고립된 삶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모든 시민이 존엄과 관계 속에서 나이 들 수 있는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처럼 고독 문제를 공중보건 위기로 다루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사회에 의료‧복지‧주거를 잇는 통합지원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북유럽처럼 주거 정책을 복지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 ‘집’이 가장 안전한 돌봄 플랫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립을 넘어 더불어 함께하는 따뜻한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적‧사전예방적‧사람 중심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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